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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봉

31. 화엄봉

대장봉과 농주암의 왼쪽에 있는데 바위 모양이 "(華嚴)" 두 글자 모양이라고 해서 화엄봉이라 하고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전하나,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포교한 것으로 의상대사일 것으로 추측한다.

일월봉

32. 일월봉

화엄봉 왼쪽에는 세 개의 바위가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제석봉 가는 길에서 가깝게 보면 맨 위의 바위가 보이지 않아 일(日)자 형이고 탑대에 올라 전체를 멀리서 보면 월(月)자 형으로 보여 일월봉이라 한다.

흔들바위

33. 요암

일월봉 왼쪽 제석봉 뒤쪽 맞은편에 있는 흔들바위로 거북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구암(龜岩)이라 하였으나 한 사람의 힘으로도 움직인다 하여 흔들바위라고도 부른다.

바위의 무게는 35톤가량 된다. 거북 모양의 목부분을 위로 추켜 세우듯 밀면 가장 잘 흔들린다.

부소암

34. 부소암

중국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법왕대라고도 한다.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 중에서

문득 엄청나게 큰 바위가 하늘로 해처럼 솟았다. 그럴듯한 이름 하나 주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으니, 이름하여 "부소암"이다. "부소"는 중국 진시 진시황의 태자 이름이다. 남해 외딴섬 바위에 어이하여 진나라 시황의 큰아들 이름 부소가 붙었을까? 누가 붙인 이름일까? 유배객이 붙인 것은 아닐까? 이 금산에 올랐던 류의양이 붙였을지도 모르고, 남구만이 붙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간신배의 참소로 억울하게 이 고독한 외딴섬에 귀양 온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임금이 콩과 보리를 가리듯이 충신과 간신을 가리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말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진나라 시황의 태자 부소이다.

진시황의 두 아들이 있었다. 똑똑하고 착한 부소와 흐리멍덩한 호해가 그 두 아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인은 자신보다 똑똑하고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법이다. 간신배 이사와 환관 조고는 장차 부소가 임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진시황에게 참소를 넣었다.

"부소가 폐하를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소를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보내라."

진시황은 호해를 가까이하고 부소를 멀리 변방으로 내쳤다. 올빼미의 무리 이사와 조고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소가 폐하를 원망합니다."

진시황은 부소에게 칼을 내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으라는 말이다. 부소는 그것이 간신배가 꾸민 간괴인 줄 알고 불로초를 찾아 삼신산으로 떠나는 서불의 배를 타고 도망을 쳤다. 서불이 동으로 동으로 배를 몰다가 남해 금산에 도착하였다.

서불은 양아리 골짜기의 바위에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다시 떠났다. 그러나 부소는 떠나지 않았다. 신령스러운 바위 아래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주어진 수명을 누리고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소암이라 불렀다. 역사에서 부소는 진시황이 보낸 사약을 받고 변방에서 죽고, 둘째 아들 호해가 임금 자리를 계승하였다. 호해가 임금이 된 지 3년 만에 진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움막이 지금도 있다. 부소가 살았던 그 움막일까? 절벽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속세 사람의 집이 아니다. 도 닦는 사람일까, 부소처럼 쫓겨와서 숨어사는 사람일까? 예나 지금이나 속세를 떠나 숨어사는 이는 끊이지를 않는구나.

남해 양아리 석각

35. 남해 양아리 석각

양아리 두모에서 부소암으로 오르는 골짜기 큰 바위에 새겨진 고문자.

양아리 석각,"서불 과차"라고 하는 이 고문자는 진시황의 사신 서불이 선남선녀 500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캐려고 이곳에 와서 새겨놓고 간 글자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또 거란 글자라는 이도 있고, "이곳은 그 어른의 사냥터" 표시라는 설도 있으나 판독이 어려워 아직껏 베일에 싸여 있다.

세존도

36. 세존도

세존이 금산 쌍홍문에서 돌배를 타고 이 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상주 은모래 비치에서 40km나 떨어져 있지만, 날씨가 좋으면 아득히 세존도를 볼 수 있다. 이 섬에는 한복판에 원형으로 된 해상 동굴이 있다. 섬 전체가 바위이며 나무도 식수도 전혀 없는 무인도(無人島)이다. 남해에서는 오래 가물고 한발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을 본다고 하는 이야기가 민간에 전해오고 있다. 남해의 섬 중에서 낚시가 가장 잘 되기로 유명하여 낚시철이 되면 수많은 꾼들이 모여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박진욱의 [역사 속의 유배지 답사기] 중에서

꼭대기에 올랐다. 꼭대기가 봉수대이고 봉수대에서 다도해가 발아래로 보인다. 류의양이 남해문견록에 이를 적고 있다.

"그 봉에 적정을 살피는 높은 대를 쌓았으니 배가 오는가 사람을 두어 살피는 곳이리라. 이 봉에서 대마도를 보고 일출도 본다고 하고 서쪽으로는 전라도 좌수영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바다가 가이 없는데 바다로 수백 리는 한데 큰 뫼 하나가 있는데 그 뫼 가운데 구멍이 크게 분명히 보이니 그 뫼 유혈도라 일컫는다."

유혈도는 지금 세존도라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모양은 변함이 없다. 옛날에는 구멍이 뚫렸고 지금도 구멍이 뚫렸다. 지금도 비가 오지 않으면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올린다. 그러면 세존도는 옛날처럼 비를 내려준다고 한다.

노인성

37.노인성

노인성은 춘분, 추분절의 전후 3일, 7일 동안 남해에서 가장 잘 보이는 별이다. 이 별은 사람의 목숨을 맡고 있는 별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 별을 자주 보면 장수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일년 중 춘분, 추분절만 되면 금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일출경

38. 일출경

금산 38경 중 가장 첫 손에 꼽는 것은 정상과 보리암에서 보는 일출. 상사바위에서 보는 일출도 그에 못지않다. 수평선과 구름 사이를 뚫고 물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일출은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수면 위로 침묵을 지키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깨우면서 붉은빛으로 피어오르는 금산 일출.
전국 어느 곳의 일출보다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황홀한 금산 절경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