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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대로 3829
담당자 전화 055-860-8631
  • 지정 : 사적 제232호
  • 지정일 : 1973. 06. 11
  • 시대 :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임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의 충의가 담긴 국난 극복의 현장이다.

노량해전으로 더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순국한 곳이다.

선조 31년(1598) 조선과 명나라의 수군이 도망가는 왜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관음포 앞바다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적의 탄환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 이에 관음포 앞바다는 이순신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이락포(李落浦)’라고도 부르며, 마주 보는 해안에는 이락사가 있다. 그 후 순조 32년(1832) 이순신 장군의 8세손 이항권(李恒權)이 통제사로 부임하여 왕명으로 제사를 지내는 단과 유허비, 비각을 세웠다.

비명(碑名)은‘유명수군도독조선국삼도통제사증의정부영의정시충무이공순신유허비(有明水軍都督朝鮮國三道統制使贈議政府領義政諡忠武李公舜臣遺墟碑)’이다. 예조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洪奭周)가 찬(撰)하고 형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 이익회(李翊會)가 서(書)하였다. 이 비는 높이 187㎝, 너비 75.5㎝,두께 22㎝이다.

1950년 군민의 성금으로 이락사 돌계단 오른쪽에‘리충무공전적비’와‘이락사공사기념비’를 세웠다. 1965년 4월 13일 유허비 모각비를 건립하면서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뜻인 ‘대성운해(大星殞海)’와‘이락사’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액자를 경내에 걸었다.‘리충무공전적비’의 비문은 리홍주가 짓고 이갑성이 썼다.

1991년 2월 16일에 유허 비각이 있는 곳에서 500m 정도 능선을 따라 바다 쪽을 향하면,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광양만과 노량해협 그리고 관음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첨망대를 2층 누각으로 건립하였다.

그리고 잔디광장에는 이충무공이 유언한“전방급신물언아사(戰方急愼勿言我死, 전쟁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하라)”라는 글씨글 높이 8m의 자연석에 새긴 유언비가 1998년 12월 16일(음 11월19일)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 추모식 때 제막되었다. 글씨는 남해군 출신으로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류삼남 대장의 친필이다.

이락사와 관음포 앞바다는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의 공로와 충의가 담긴 역사의 옛터일 뿐 아니라 국난 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사적의 명칭은 2011년 7월 28일 관음포이충무 공전몰유허에서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유적으로 변경되었다.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유적 경내에는 2008년 12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관한 전시관과 3D입체영상관을 갖춘 이순신영상관이 개관되었다.

또한 2011년부터 관음포 일원 89,869㎡의 부지에 280억원의 예산으로 이순신 순국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2015년말 순국공원이 조성되면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유적지 일원은 이순신 장군은 물론 임란 당시 한·중·일 수군 전몰자의 순국의 뜻을 기리고 동북아 평화를 상징하는 공원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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