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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전경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충의가 담긴 국난 극복의 현장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일본군에게 조선에서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 장군과 진린 제독의 조·명 연합수군은 철수하는 적을 막기위해 관음포앞바다에 진을 치고 최후의 혈전을 벌였다. "저 원수를 섬멸할 수 있다 하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이순신 장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축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결국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의 탄환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 관음포 바다를 안고 있는 오른팔 이락장곶(李落長串)은 장군의 주검을 육지에 맨 먼저 모신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8대손 이항권이 1832년(순조 32)에 통제사로 부임하여 왕명으로 제사를 지내는 단과 유허비, 비각을 세웠고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은 1973년 6월 11일 사적 232호로 지정되었다.


유언비

유언비

1998년 12월 16일(1598년 당시 음력 11월 19일) 이순신 장군 순국 400주년 추모식 때 제막되었다. 높이 8m의 자연석에는 '전방급신물언아사(戰方急愼勿言我死,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라고 새겨져 있다.

글씨는 당시 남해군 설천면 출신으로 해군참모총장이셨던 유삼남 총장의 친필이다.

비각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반송

비각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반송

유허비에서 비각으로 가는 길 양옆으로 사철 푸른 반송이 땅에서부터 가지를 찢어 오솔길을 이루고 있다. 나라와 백성의 고초가 애달파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의 충민(忠愍)정신을 닮았다.

관음포만

관음포만

관음포만은 우리나라 최고의 호국성지로 불리고 있다. 몽골의 침략을 부처님의 가호로 물리치기 위해 고려 팔만대장경의 판각을 위한 치목(治木) 장소이자 고려 말 왜구를 물리친 4대첩 중 하나인 정지 장군이 대승한 관음포대첩의 현장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진정한 호국의 성지인 것이다.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편액이 적힌 비각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편액이 적힌 비각

대성운해(大星隕海,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라는 편액이 붙은 비각 안에는 예조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가 글을 짓고, 형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 이익회가 글씨를 쓴 비석이 있다.

'유명수군도독 조선국삼도수군통제사 증의정부영의정 시충무 이공순신유허비(有明水軍都督 朝鮮國三道水軍統制使 贈議政府領議政 諡忠武 李公舜臣遺墟碑, 천하를 소유하고 있는 명나라의 수군도독으로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이며, 의정부 영의정으로 관직을 보태고 충무라는 시호를 받은 이공 순신의 유허비)'는 옛 역사에도 이 이후의 역사에도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